*하단의 글은 저의 오래전의 이야기로 현재의 정보와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호주 여행은 시작부터 산뜻하지는 않았다. 퇴사한 다음 날 바로 비행기에 올라 10시간의 비행시간 뒤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른쪽 브레이크가 부러진 휠체어였다. 기내용 휠체어에서 내 휠체어로 옮겨 앉아 부러진 브레이크를 손에 쥐고 황망히 승무원과 시선을 주고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대충 파손에 관련한 서류를 주고받고 여행을 이어나갔다. 겨우 브레이크 하나 부러진 것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무려 첫 회사를! 퇴사하고! 떠난 여행이니까.

매번 여행마다 단기 여행이든 장기 여행이든 내가 하는 첫번째 일은 유심을 구입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뿐더러, 나에겐 큰 의미가 있다. 바로 현실과의 단절이다. 유심 교체는 마침내 내가 있던 현실과의 연결을 끊는 행위이다. 백번이든 천 번이든 문자 하든 전화를 하든 나에게 전달되지 않으니 말이다.


사실 성당인지 교회인지 잘 모르겠다. 처음 숙소에서 체크인하고 14시간 비행 덕분에 떡진 머리로 돌아다니는데, 예쁜 성당이 보여서 사진을 찍고있던도중 누군가에게 이끌려 미사까지 봤다. 그와중에 맨 앞자리로 안내받아서 중간에 나갈 수도 없었다. 미사가 끝난 다음에는 간단한 빵, 커피가 준비되어있어서 커피까지 한 잔 얻어마셨다. 여행이 즐거운 건 이런 돌발적인 순간의 행운인 듯.



그리고 호주 여행의 큰 목표 중 하나였던 스쿠버다이빙.
회사 출근시간과 동일하게 이른 5시에 일어났다. 대충 씻고 나서는 졸린 눈으로 수건, 물안경 등을 챙겨 주섬주섬 호텔을 벗어나 Town City 역에서 Kogarah 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동네 시골처럼 조그맣고 한적한 Kogarah 역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1층에 있는 작은 카페와 과일가게를 흘깃흘깃 바라만 보면서 Matt를 기다렸다. 여행을 오기전 한국에서 메일을 주고받은 Matt과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고 나서야 낯선 타국이 주던 긴장감을 해소했다. Matt와 함께 왔던 Tim의 새빨간 픽업트럭을 타고 Abyss 사무실로 향했다.

이동한 사무실에서 간단한 테스트를 하고, 바로 Sans Souci Leisure Centre로 이동했다. 바다에서 직접 스쿠버다이빙을 하기 전에 수영장에서 먼저 연습하는 과정이었다.


아침의 Kogarah역은 무척 쌀쌀했는데, 수영장으로 이동했을 때 날씨는 기가막혔다.
첫째 날에는 열심히... 수영장 물을 먹었다. 정말 물을 많이 먹어서 속이 메스꺼울 정도였다.
무려 9시부터 4시까지 연습했으니까, 이 날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도전한 스쿠버다이빙이었는데, 오히려 물에 대한 공포만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입고 허우적거리고 있노라면, 숨이 턱턱 막히고, 점심에 가볍게 먹었던 토마토 수프와 빵 한 쪼가리 마저 다시 목구멍 위로 넘어오는 것 같았다. 왜 이들이 가볍게 점심을 먹는지 알 것 같았다.
몸은 덜덜덜 떨리고 이러다 실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너무 춥다고 했더니, 야외 수영장에서 실내 수영장으로 이동해 연습을 이어갔다. 실내 수영장의 물은 따뜻해서 그나마 살 것 같았다. 바닷물은 훨씬 추울 텐데 괜한 모험을 했나 후회가 들었다.
내 신체적 능력을 과대평가했나. 회사까지 그만두고 와서 이게 무슨 짓인가... 내가 수영선수도 아니고 9시부터 4시까지 수영연습이라니.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물속에서 두 손만으로 온 몸을 컨트롤해야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셀 수 없이 물 속에서 몸이 뒤집혔고, 머리가 처박히고, 제대로 호흡하지 못하거나 레귤레이터를 잘못 물어 코와 입으로 물이 들이찼다. 염소로 명치 아래까지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오른쪽 귀에 통증이 시작됐다. 회사에 다니면서 급격히 나빠졌던 귀의 상태가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또다시 말썽인가 싶어 확 무서워졌다. 메니에르 증상으로 새벽 내내 토했던 날의 트라우마가 자꾸만 떠올랐다. 더 이상 강행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첫째 날의 연습은 그렇게 마무리 지었다.

원래대로라면 월요일에 첫 번째 연습을 하고, 화요일에 두 번째 일정을 마친 뒤 금요일에 마지막으로 두 개의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것으로 스케줄이 짜여 있었다. 하지만 하품을 하거나 입을 조금이라도 크게 벌리면 귀에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통증이 왔다. 결국 이틀째 날을 취소하고 마지막 날 하나의 바다만 방문하는 것으로 스케줄을 변경했다.
고된 첫째 날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 7시에 잠든 나는 다음날 아침 10시에 눈을 떴다. 무려 13시간을 잤다. 잤다기보다 기절했다, 실신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온몸이 삐그덕거렸다. 나도 모르게 수영장 바닥이나 벽에 긁힌 무릎은 상처투성이였고 열 손가락은 퉁퉁 부어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뭐 하고 있지 라는 후회에 빠져 다시 우울해지기 전에 얼른 외출 준비를 하고 따뜻한 시드니 시내를 질주하고 다녔다. 목적지 없이, 딱히 가야 할 곳 없이... 그냥 돌아다녔다. 그러고 보면 여행 내내 시드니는 항상 날씨가 좋았다.

두 번째 날은 그냥 그렇게, 심심하게 끝이 났지만 덕분에 푹 쉬었다.
오늘은 Hyde Park Inn 호텔에서 체크아웃, 그리고 Central 역 앞에 있는 Wake up Sydney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새로운 숙소에 캐리어를 맡기고, 다시 Kogarah 역으로 떠났다. 월요일에 워낙 힘들어서 그랬는지 솔직히 다시 시작하는 게 무서웠다. 하지만 용기를 냈다(결제는 끝났으니까....).


한 번 경험하고 나니 좀 더 배를 든든히 하고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 도착한 역 1층에 있는 Platform one 카페에서 살구 타르트와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배를 채웠다. 야외 카페라 좀 추웠지만 따뜻한 커피와 살구 타르트는 수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최고의 아침이었다. 그때의 감동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추워지려고 할 때 꼴깍 넘겼던 카푸치노 한 모금은 정말이지 무척이나 달콤하고 따뜻했다. 시드니의 카페는 어디든 커피가 진해서 나의 입맛에 딱이었다.
두 번째 날의 연습은 첫 번째의 고됨을 잊을 정도로 즐거웠다. 포기할까 고민했었던 시간이 순식간에 잊혔다. Matt와 Tim이 내 속도에 맞춰서 가르쳐 준 게 가장 컸고, 연습 시간도 좀 줄여줬다. 물론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다섯 시간...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절대 적지 않은 시간인데, 첫째 날보다 더 줄어서인지 가볍게 느껴졌다. 두 번째 먹은 점심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스프레드, 베지마이트에 도전했다. 냄새는 좀 그랬지만 생각보다 먹을만했다. 눈을 감고 먹으면 약간 된 간장을 먹는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 스쿠버다이빙, CAMP COVE.
마침내 바다로. 이제 마지막 방문이 될 Kogarah역에서 치킨 슈니첼 김말이를 우물거리면서 Matt와 멜버른으로 떠난 Tim 대신 새로운 여자 스탭을 기다렸다. 우리가 향한 곳은 Camp Cove! 작지만 예뻤던 바다였다.

슈트를 힘겹게 입고 바다로 들어간 첫 느낌은, 정말 너무너무 추웠다. 그리고 수영장 물과 다르게 끊임없이 몸이 두둥실 떠올라 컨트롤하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건.... 내가 렌즈를 챙기지 않은 점이다! 가장 중요한 나의 눈을 두고 오다니. 이미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그대로 마스크를 쓰고 레귤레이터를 물었다.
바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탁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깊은 바닷속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순간순간 matt가 내 옆에 있는지 확인했다. 어둡고 깊은 바닷속이 무서워서 혼자 남겨져있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 로그북을 작성하며 마신 카푸치노도 정말 맛있었다. 추웠지만 의미 있었고, 그냥 그 따뜻한 모래에 그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한 순간이었다. 여러 바다를 가보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그때 내 몸 상태에 Camp Cove면 충분했다. 나도, Matt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일주일 내내 사진 찍을 경황도 없어 사진이 많지 않은 게 아쉽다. 지나고 보니 죄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만 남았다. 스쿠버다이빙이 끝난 뒤의 사진들은 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나의 호주 여행 사진기는 스쿠버다이빙 전과 후로 나뉜다.
솔직히 다시 혼자 호주에 가서 하라고 하면 못 하겠다. 진짜 뒤지게 힘들었다. 레귤레이터를 하도 억세게 문 탓에 앞니가 조금 깨진 데다가 어금니 통증 때문에 한국에 돌아온 뒤 한동안은 치과를 다녀야 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그때 아니면 못 했을 경험이었을 테니까. 그때였고, 그때의 그런 나였기 때문에 가능한 도전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생기면 우울한 생각만 가득할까 봐 일부러 타이트하게 스케줄을 잡았으니까!

Camp Cove 해변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또 방문하고 싶다. 작아서 더 좋았다. 스쿠버다이빙을 마친 뒤에 햇빛에 부서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차가워진 몸을 뜨거운 모래에 녹였던 감촉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휠체어를 탄 뒤로 모래는 나에게 밟지 못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장애 그 자체였으니까. 그때도 나는 가만가만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싶어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햇빛의 온기를 담은 모래를 자꾸만 손에 쥐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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