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의 글은 저의 오래전의 이야기로 현재의 정보와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멜버른의 첫 번째 숙소였던 Rendezvous Hotel은 호주 여행 중 제일 마음에 드는 숙소였다. 다만 호텔의 입구가 계단식이라서 호텔 왼편으로 돌아간 다음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로비로 올라갈 수 있었다. 3일 정도 묵었는데 그중 이틀이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 호텔 뒤편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직원들의 대응은 즉각적이었고 친절했다. 게다가 호주 물가치고 룸서비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괜찮아서 썩 맘에 들었던 호텔!






시드니에서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했다면 멜버른에서는 트램과 뚜벅이 생활이었다. 다만 관광지를 위주로 도는 트램은 대부분 저상 트램이었지만, 도시 외곽을 돌거나 관광지를 좀 벗어난다 싶으면 저상 트램이 아니었다. 나는 워낙 급하게 멜버른 여행을 결정해서 미리 알아볼 틈이 없었는데, 이점은 좀 아쉬웠다. 하지만 또 미리 알아봤더라면 멜버른 여행을 포기했었을 수도 있으니 오히려 행운이었을 수도 있겠다. :)














지난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이토록 하루에 라떼, 플랫화이트, 롱블랙 등 다양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었던 당시의 나 자신이 부럽다. 요새는 건강상의 이유로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거의 먹지 못한다. 참지 못하고 사 먹게 되면 몇 입 홀짝이는 수준이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에나 나 자신에게 라떼를 허하는 자비를 베푼다. 그 외에는 반드시 귀리우유나 아몬드우유의 선택지가 있어야 하는 카페여야 하고, 디카페인으로 먹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카페에 이런 커스텀이 흔해지는 추세라 그나마 다행이다. 커스텀을 하고 나면 천원~천오백원 커피 가격은 올라간다... 당연했던 것이 당연해지지 않은 요즈음... 커피 한 잔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을 줄이야. 더 많이, 더 자주 먹을 걸.
다음 숙소는 United Backpacker 호스텔이었다. 예상치 못해 길어졌던 여행이니만큼, 여행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다시 호스텔로...이쯤되니 서서히 짐 싸는 것도 귀찮아졌던. 막상 여행 와서는 마음이 심란해 어쩔 줄을 모르겠더니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니 돌아가기 싫어 죽는 줄 알았다.
내가 머문 곳은 209호였는데, 시드니에서 머물렀던 호스텔과는 사뭇 달랐다.


시드니와 가장 큰 차이점은 숙박객들이었다. 워킹 홀리데이 중인 장기 숙박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국가도 다양했다. 아시아인을 가장 많이 만난 도시이기도 하다. 내가 머문 12인실도 절반은 워킹 홀리데이 중이었다. 밤이면 파티와 각종 이벤트로 정신없었던 시드니의 호스텔과 달리 조용한 편이었다.






멜버른에는 비가 참 자주 왔고, 순식간에 왔다가 순식간에 그쳤다.








회사는 쏟아지는 공을 미친 듯이 받아쳐내기 바쁜 곳이었다. 딱히 직장에 대해 환상도 야망도 없이 뛰어들긴 했지만 생각보다 힘들었다. 야근수당이 없지만 자연스럽게 야근을 하게 되고, 주말수당도 당연히 없지만 주말에 일해야 했다.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았고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래, 직장이란 원래 이런 거니까. 다들 이렇게 살고 있잖아. 남들보다 늦게 대학에 입학한 만큼 빨리 졸업하고, 빨리 취업해야지. 빨리 따라잡아야 해.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해냈다고 생각했다. 늘 초조해 있었다. 그럴 필요 없었는데.
만족했다. 나를 인격적으로 괴롭히는 직장 선배도 없었고 상사는 무능력하지 않았다. 회사는 장애가 있는 나에게 필요한 여러가지 것들을 제공했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어서 감사했다. 밤 10시는 기본으로 찍고 퇴근하는 동기들에 비해 늦어도 8시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난 참 운이 좋아.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숨이 찼다. 8시에 회사에 도착해 자투리 업무를 하다보면 9시가 금방 지났다. 업무상 돌아가며 일찍 회사에 도착해야 하는 업무가 있었는데, 팀원보다 1시간 더 빨리 출근해 업무를 시작했다. 겨울이면 해도 뜨지 않아 어두컴컴한 사무실의 불을 켜고 들어가는 일들이 많았다.
일찍 도착했지만 회사에 들어가기 싫어 카페에 꼭 들렸다. 회사 앞 스타벅스의 오픈시간은 7시였다. 그리고 나는 꽤 자주 첫 손님이 되었다. 커피는 늘 식은 채로 마셨다. 뜨거울 때 들고 출근했지만,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면 커피는 테두리가 잔뜩 응고된 채 굳어서 식어 있었다. 그 이후로는 아이스커피만 마셨다. 위가 화끈거릴 때마다 얼음을 잔뜩 넣은 커피를 마시면 좀 살만했다.
데일리한 업무가 늘어갔다. 사소하지만 신경 써야 하는 업무가 많아졌다. 조금 익숙해지자 선배들의 일을 인계받았다. 불만은 당연히 없었다. 나에게 업무를 덜었어도 선배들은 항상 일이 많았다. 그 누구도 쉬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더 슬펐다. 하루 총 근무시간의 한 시간 정도나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쉬고 있노라면 어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해 갔다. 이 일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었다. 좀 더 꼼꼼하게 처리하면서 선배들의 장점을 배워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흡수하고 싶었다. 스트레스도 물론 받았다. 하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노력하면, 더 연습하면 할 수 있어. 노력하면 돼. 남들보다 좀 더 일하자. 그러면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아팠다. 동기들과 모임을 가진 뒤 다른 팀 선배에게 힘들다고 투덜거렸다. 야 나도 힘들어. 선배가 말했다. 맞아 우리 다 힘들지.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다 그래. 집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눕고 나니 12시였다. 참 피곤했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조금 어지러웠다. 너무 피곤해서 몸이 쉽게 잠이 못 드나 보다 했다. 가끔 그랬으니까.
구역질이 났다. 새벽 내내 잠들 수 없었다. 화장실에 가서 속을 게워냈다. 너무 피곤해서 몸을 눕히기 무섭게 어지러움에 다시 일어났다. 그렇게 토하고 눕고를 반복하다가 새벽을 보냈다.
동이 터오는 창가를 보며 생각했다. 이상하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정말 노력했는데. 힘들면 가끔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 하며 한탄하고, 다시 이겨내고, 한 사람의 몫을 해내서 그에 맞는 돈을 벌어 먹고 살 수 있다는 나의 유일했던 삶의 목표를 이뤄가고 있는 것 같아서 내심 기뻤다.
하지만 괜찮지 않았던 걸까.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걸까. 그때의 나는 정말 괜찮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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