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의 홋카이도 1. 히사시부리다네! 참 반갑습니다

여행 당일 새벽까지 일본 여행 블로그를 들락거리던 나에게 인천국제공항은 생각보다 한산해 보였다. 끊임없이 업로드되는 게시물들만큼 북적거리리라 기대했었나보다. 탑승하려던 항공사의 대기줄은 길었지만, 택시에서 내린 순간부터 체크인, 아기 주먹보다 작은 향수를 커다란 비닐에 포장한 면세품 하나, 스타벅스에서 BLT샌드위치와 오트밀크로 바꾼 카라멜 마끼아또를 들고 탑승 카운터까지 오기까지는 불과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물론 pritory 우선 체크인, 우선 검사대 등 덕분이기도 했고 대기인원 단 한 명 없는 면세품 수령 덕분이기도 했다. 기다려야 했던 건 스타벅스의 커피뿐이었다.

처음 이용한 제주항공은 우려했던 대로였다. 비행기표를 구매하고 잘 연결되지 않는 고객센터에 두 차례나 기내휠체어 요청, 배터리 성분 및 개수 등을 전달했지만 체크인을 할 때 전혀 기록되어있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연되나 싶었지만 니켈수소 배터리임을 알고 난 뒤 그들은 규정을 다시 확인해보는것 같았다. (항공사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니켈수소는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통과가 용이하다. 수화물이 아닌 기내에 싣게 하기도 한다) 비행기를 탈 예정이 있고 본인이 전동휠체어를 사용한다면 니켈수소가 정답인 것 같다. 어찌 됐든 비행기표를 받고 검역대를 지나 출국장에 들어오자 모든 걱정이 조금은 풀렸다. 왠지 귀국할 때도 이럴 것 같지만 오늘처럼 어떻게든 되겠지!

어제 새벽 두시쯔음 잠들었다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해 6시 알람이 울리기 전 두세 번 깼더니 밤을 새운 듯 몽롱하다. 한국의 날씨는 기가 막히게 따뜻한데, 뻣뻣한 양털무스탕과 어그부츠가 삿포로에서 짐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탑승했다.

비행기는 거의 전좌석이 꽉 찼다. 사전좌석구매 화면에는 예매된 자리가 거의 없어 혹시 조용히 갈 수 있나? 기대했었는데, 선착순으로 자리를 요청할 수 있어 체크인 카운터는 사전좌석구매를 신청하지 않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역시 돈이 아까워 사전좌석구매를 하지 않았는데 항공사에서 내 옆 두자리를 비워주어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그나저나 3년 만에 탑승하는 비행기의 기내는 놀라울 정도로 좁았다. 기내휠체어가 통로를 지나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예전에 경험했던 진에어가 생각났다.

12시 30분에 이륙한 비행기는 2시 43분에 착륙했다. 이제 벨트를 풀어도 된다는 승무원의 방송에 순식간에 일어나 기내의 짐을 꺼내고 나갈 준비를 마친 한국인들이 복도에 우르르 발을 걸쳤다. 문이 열리기 전 흐르는 정적은 마라톤 경주의 출발을 알리는 긴장감과 비견해도 부족치 않아 속으로 웃었다. 하여튼 한국인들 성격 급한건 알아줘야 한다. 걸어 나가며 천장에서 캐리어를 꺼내면서 나가는 사람(손과 발이 동시에 나감), 수북한 짐을 양손에 들고 상체를 가로로 꺾어 성큼성큼 걷는 사람(가로인간이신가요) 등. 순식간에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한국에서 미리 결제한 홋카이도 레일패스를 수령하고 내일 탑승할 하코다테 휠체어 지정석 왕복권을 끊는데 약 30분을 소요하고 나서 숙소로 돌아가 한 생각은 후회였다. 체크인후 잇핀에 거의 12시간 만에 제대로 먹는 한끼, 생맥주와 부타동은 물론 맛있었지만 너무 피곤해 잘 안 들어갔다. 진짜 말도 안 되게 피곤했다. 하긴 지난 3년의 시간 동안(실은 그 전에도) 나는 숨쉬기 외에 운동을 하지도 않았고, 오로지 출근과 퇴근만을 반복했으며, 말도안되게 불규칙적인 식생활을 했다. 건강을 관리하지 않은 댓가를 실시간으로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잇핀의 부타동

내일 푹 쉬지 않으면 몸살이 올 것 같았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며 지정권 예매 후 취소, 예매 후 안 가면 수수료 얼마... 등등을 검색하다 잠들었고, 세네 번 깼고, 기상시간까지 고민하다 지금 하코다테행 호쿠토 2호차 휠체어 지정석에 앉아 이걸 쓰고 있다. 다행히 어제의 피로는 많이 풀렸다. 호쿠토는 생각했던 것보다 깔끔했다. 휠체어 지정석은 KTX와 다르게 수동, 전동이 나뉘어있지 않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수동휠체어 석만 있는 것이다. 많은 인원이 이용하긴 힘들겠지만 의자에 잠깐 옮겨 앉을 수 있어 좋았다. 그만큼 폭도 우리나라보다는 좁다. 그리고 화장실!!!! KTX 특실 화장실만큼 좁다... 절대 이용 불가하다. 사실 장거리 이동이라 화장실 때문에 시간이 걸려도 지정석을 예매한 건데, 귀찮으면 그냥 자유석을 이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

들어오는 하코다테행 호쿠토 열차

뒤에 있는 종이가 무려 약 19만원짜리 홋카이도 레일패스

6시 20분쯤 삿포로역에 도착했는데 한 30분까지도 에키벤을 파는 곳은 없었다. 7시쯤 여는 것 같다. 어제 로손에서 주전부리를 사놓길 잘했다! 무인양품에서 피치 소다를 대실패하고 자판기에서 따뜻한 녹차를 샀다. 이제 3시간 53분 뒤인 10시 38분에 하코다테에 도착한다. 와아.... 돌아올 때는 어떻게 하지?

B, C 좌석 쪽

내가 앉은 12D 좌석 방향은 바다 쪽이었다. A D가 창가, B C가 통로 쪽이다.
덕분에 내내 우치우라만 넓은 바다와 곱게 뻗은 수평선, 그리고 왼쪽 뺨에 작렬하는 태양까지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제일 날씨가 좋을 것이라 예상되는 날에 이동거리 7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좋은 선택일지 고민했는데 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비록 아직 하코다테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15분이나 남았지만 말이다.

아몬드빼빼로와 따뜻한 녹차

우치우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