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해외탐방기

히로시마에도 평범한 일상은 흐른다

728x90
300x250

 

히로시마 역은 앞뒤로 공사가 한창입니다(24.5월 기준). 역의 남쪽과 북쪽을 서로 건너갈 때는 중앙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무도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도라기보다는,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합니다.

 

퇴근 또는 하교 중인 사람들로 역은 무척 붐비고 있어요. 에스컬레이터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섰지만, 모두들 줄을 설뿐 떡하니 보이는 한대의 엘리베이터를 누구도 이용하지 않습니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젓가락 두개 나란히 서있는 줄을 어색하게 뚫고 지나갑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당연한 이 현상이 뭔가 뻘쭘하고 낯설어 후다닥 엘리베이터 닫기 버턴을 연타로 눌렀습니다.


히로시마의 트램은 각각 빈티지한 색감 개성 있고 귀엽습니다. 트램을 직접 탑승하진 않았지만 휠체어도 탑승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일본의 교통수단은 휠체어 접근가능한 교통편은 보통 전면 상단에 휠체어 마크가 있어 알아보기 쉽습니다. 트램 중에 1량짜리 우와 귀여워 빈티지해!! 하는 트램은 휠체어는 탑승할 수 없습니다.

이 외에 좀 새로 만들어진 것 같은 트램들은 모두 전면에 휠체어 마크가 있습니다. 딱 봐도 생긴 것부터 달라 모두가 느낄 수 있다을 겁니다. 빈티지한 트램과 그렇지 않은 트램들이 한눈에 구별될 정도로 다르니, 절대 헷갈릴 수 없어요.


아침 일찍부터 이쓰쿠시마 섬에 다녀온다고 부지런을 떨었더니 급 피로가 몰려와 방에 처박혀서 기절하듯 잠들었습니다. 그렇게 2시간 정도 꿀 같은 단잠을 잤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이 고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적당히 자고 일어나지 않으면 생체리듬이 바꿀 수 있으므로 꾸역꾸역 몸을 일으킵니다.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오후에 기절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히로시마 돈키호테는 출입구가 두 개 있는데 정면 출입구는 경사로가 둥글어 진입이 어렵고 측면은 좀 더 편합니다. 돈키호테는 진짜 꽃게 모양을 한 꽃게칩, 말린 닭날개 등 희한한 간식거리뿐만 아니라 쌀, 과일, 식재료도 팔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장을 보는 현지인이 많이 보입니다. 이것저것 처음 보는 주전부리를 좀 집고 싶었지만 잘 참아냈습니다. 아직도 방문해야 할 도시가 많이 남은 나에게 돈키호테 쇼핑은 사치입니다. 그리고 사실 단걸 너무 먹어서 달달한 간식 같은 것은 전혀 내키지  않습니다. 일본 음식 자체가 달아서 여행 중간중간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신라면 컵라면이 보이면 일단 들고 와서 여러 번 끼니로 때웠습니다. 신라면의 얼큰한 국물이 아니었다면 점점 입맛이 짧아져 몇 킬로 더 빼왔을 텐데요. 다행인지, 일본 어느 편의점을 가도 신라면은 있더라고요.

돈키호테는 날달걀도 팔고 있습니다. 무려 169엔입니다. 우리나라 달걀 가격에 비하면 정말 놀랍습니다…  어느 나라를 가도 식재료의 물가는 우리나라를 이기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측면 출입구
정면 출입구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한국에서 가져온 츄르를 가방에서 꺼냈습니다! 어떤 검은 고양이가 힘없이 금방이라도 픽하고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아마도 쉴 곳을 찾고 있는 것 같은데, 네발달린 인간이 자꾸 따라오니 휴식처를 찾지 못해 계속 걷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래서 일단 쫓아가길 멈추고(?) 고양이가 향하는 방향만 지켜봅니다.

고양이와 나와의 시야에서 서로가 사라졌을 때쯤 스르르륵 다가가보니 차가 몇 대 없는 주차장에 있는 작은 차 뒤에 그루밍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다 주면 또 도망갈 것 같아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을 곳에 츄르를 흔들며 보여주고 쭈욱 짰습니다. 그리고 다시 스르르륵 후진해 고양이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다시 좀 대기하다가 슬쩍 고양이 쪽을 봤더키 그새 나와서 짜놓은 츄르를 할짝할짝 한참을 먹습니다. 먹였다기보다는 거의 드셔 주신 수준이긴 하지만 마음이 뿌듯합니다. 다 먹은 후에는 다시 차 뒤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검은 고양이에게 눈인사를 하고 좀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떠납니다. 안녕!


트램 길을 휠체어로 지나가는 것은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설레는 두근거림이 아니라 두려운 두근거림입니다. 앞바퀴가 정면을 향하고 있지 않으면 그 사이에 바퀴가 푹 빠지기 때문입니다. 바퀴를 살짝 비틀어 건너야 합니다. 예전에 체코여행 중에 특히 트램을 많이 탔는데 시계탑 앞에서 바퀴가 푹푹 빠져 고생했던 것이 떠올라 더 무섭다. 또 회식하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도 한번 큰일이 날 뻔한 적이 있었죠. 옆에 있던 친구가 그럼 이걸 하나하나 알아봐야 하냐고 이런 시설에 대해 답답해했던 것이 생각나네요. 대신 분노해 주어서 고마웠지만 이것은 저에게 일상이라서 그 친구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 히로시마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 도라야끼 코너에 줄이 길게 서있었다. 다카마쓰에는 줄이 하나도 없어 바로 딱 한 개 구매해서 먹었었거든요. 그때 먹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줄 안서도 되잖아요? 도라야끼는 풍부한 앙에 달지 않고 부드러워 남녀노소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맛입니다. 위의 사진이 다카마쓰에서 먹은 도리야끼입니다. 한 개라도 정성스럽게 포장해 줍니다.

 

소고 히로시마 백화점은 동네에선 나름 큰 백화점이었지만 식품코너는 정리되지 않은 시장통이 따로 없습니다. 백화점 맨 꼭대기 층에서 비어가든을 한다고 해서 올라갔는데, 내리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당황한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숨겼습니다. 그야말로 드넓은 야외공간에 할아버지 할머니 네 분 정도만 계셨습니다... 히로시마도 인구 전출 증가는 2년 연속 최대라고 합니다.

 


지하 1층은 식품 코너, 지하 2층은 델리류 도시락 등을 팔았는데 지하 1층보다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방금 막 무슨 운동 경기가 끝났는지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음식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합니다. 이 백화점 3층이 버스터널로 이어져서 더 붐볐던 것 같습니다.


결국 푸드코트에서는 먹고 싶은 게 없어 식당가로 올라와 오므라이스 가게에 들어갔다.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식당치고 가격이 굉장히 저렴했습니다.

 

https://maps.app.goo.gl/1oQ8rKMTb4vp2ELt6

 

サロン卵と私 そごう広島店 · 일본 〒730-0011 Hiroshima, Naka Ward, Motomachi, 6−27 広島そごう 10F

★★★★☆ · 일본식 서양 음식점

www.google.com

 


수플레 오므라이스가 시그니처 메뉴인 것 같지만 내가 좋아하는 케첩소스 오므라이스를 주문했습니다. 시그니처 메뉴가 뭐 별거입니까. 내 입에 맛있으면 그 메뉴는 오늘부터 시그니처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케첩소스 오므라이스는 시그니처 메뉴가 되었냐고요? 아쉽지만, 평범한 오므라이스 그 자체였습니다. 밥도 많아서 조금 남겼네요. 계란 안에 있는 볶음밥은 미리 볶아놓은 것인지 적당한 온기만 유지하고 있었고 심지어 조금 퍽퍽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게 960엔이면 꽤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요.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혼자 들어와서 간단하게 오므라이스를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나와 마주한 현장은 시위였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외치는 시위는 호주 멜버른에서도 만났었는데. 자유의 목소리는 히로시마에서도 현재진행 중입니다. 멜버른에서의 규모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지만 타국의 자유를 위해 함께 외쳐주는 일본 여성의 우렁찬 목소리에서 강한 용기가 전해졌습니다. 타국의 자유를 지지하는 어른의 용기가.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