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가 닿아있는 섬 이쓰쿠시마

https://maps.app.goo.gl/wXgrbsmdJ8RvcCaY9

이쓰쿠시마 섬 · 일본 〒739-0588 히로시마현 하쓰카이치시 미야지마초

 

이쓰쿠시마 섬으로 가는 날 아침, 일찍 눈을 떴습니다. 관광명소는 모름지기 첫차를 타고 가야 북적이는 인파를 피할 수 있는 법입니다. 조식이 시작되는 6시 30분, 로비에는 아침식사를 하려는 투숙객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아침밥 대신 부푼 설렘을 뱃속에 두둑이 챙겨 히로시마역으로 향했습니다.

 

 

 

 

평일 오전 7시 전, 개찰구는 썰렁했지만 탑승한 전철은 만원입니다. 성냥갑처럼 빼곡하게 사람이 들이찼습니다. 등교하는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모두들 전철에 들어서자 매고 있던 가방을 벗어 발 앞에 툭 내려놓는게 꼭 쌍둥이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몇 년 전만 해도 쩍벌남 같은 은어를 통해 좁은 지하철에서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 이슈가 됐었는데 요새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가방을 앞으로 안는다던가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죠.
 

전철속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평범한 일본의 주택가들을 눈 속에 담아 갑니다. 아이폰 시네마틱으로 동영상을 찍고 싶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노랑노랑 손잡이만 한번 더 찍어봅니다. 일본 학생들을 보면 여전히 학교별로 두발 규정이 빡빡한 것 같네요. 어떤 학교는 메추리알처럼 반들반들 머리를 깎아놓고, 어떤 학교는 여학생들의 머리가 전부 삐쭉삐쭉 숏컷 스타일입니다. 오늘도 햇볕이 따뜻합니다. 오늘도 날씨가 좋으려나보다, 하늘을 보면서 벌써 기분이 좋아요.

 

 

 

 

히로시마역에서 이쓰쿠시마 섬의 페리 탑승장까지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히로시마역에서 미야지마구치역까지 JR라인을 타고 들어가, JR페리를 타고 가면 됩니다. 전철과 페리 모두 JR패스로 통과 가능하지만, 페리의 경우 입도비 100엔을 추가로 받습니다. 페리에 탑승하기 전에 미리 매표기에서 발권해서 탑승할 때 보여주면 됩니다.

 

 

미야지마치구치역에 내려 JR 미야지마 페리 승강장으로!

 

 
섬으로 향하는 배를 탈 때는 1층이 차량을 싣는 배여서 자동차들과 함께 갔습니다. 제 자동차도 바퀴가 네개긴 합니다. 배는 정말로 오랜만에 타봅니다. 선박장에 배가 도착하면 바로 입구와 연결이 되기 때문에 따로 사람이 와서 경사로를 연결해 준다던가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타면 되어요. 배 끄트머리에 바짝 붙어 반짝이는 윤슬을, 배가 동동 떠가는 내내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허리를 숙이면 금방이라도 풍덩 빠질 것처럼 가까운 바다는 참 오랜만이라 더 좋았네요.

 

 

 

 

 
윤슬은 반짝이다 못해 기가 막히게 눈부셨습니다. 왜 그동안 일본에서 배를 타고 다른 섬을 가보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요?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여행이 항상 가슴이 설레는 건 아니잖아요.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설렘은 금방 사라지더라고요. 그런데 참 오랜만에... 설렘이라는 감정이 몽실몽실 탄산의 기포가 오르듯 가슴에 가득 찼습니다.

 

 

배는 구글 맵의 출발 시간에 딱 맞춰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타고 있는 내내 반짝이는 윤슬을 촬영하느라 몰랐는데, 배에서 내릴 때 보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배가 정박하는 일층 앞쪽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다들 위에 있어서 사람이 적다고 생각한 거였어요. 사람들은 자동차가 있는 쪽에서 바다를 바라볼 이유가 없잖아요.

 

사람들이 썰물처럼 우르르 빠져나가고 저 또한 배에서 내려 밖으로 나갑니다. 마치 어릴 때 방방 뛰면 뛰어오르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폴짝폴짝 데구르르 이쓰쿠시마 섬에 한 바퀴를 내디뎠습니다.

 

 

 

 

이쓰쿠시마의 로손은 갈색입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앞에 사슴이 있습니다. 아니 사슴이 많습니다. 사슴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내리자마자 바로 수많은 사슴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슴은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위협하지도 않습니다(물론 제가 만난 사슴이 그랬다는 겁니다. 뿔이 그대로 있는 사슴을 함부로 만지거나 하지 말아 주세요). 그냥 햇빛을 쬐면서 졸고 있습니다. 워낙 일찍 가서인지 문을 연 상점은 없습니다. 바닷가를 바라보며 이쓰쿠시마 신사까지 천천히 갑니다. 그냥 길 위에 사슴이 있어 가까운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슬금슬금

 

 

 

귀엽당

 

이쓰쿠시마는 히로시마만 남서부에 위치한 섬으로 미야지마라고도 불립니다. 일본 3대 절경중 하나라는군요(2개는 마쓰시마섬, 아마노하시다테, 그리고 우리가 이미지로 많이 접한 세계유산 이쓰쿠시마 신사).

이쓰쿠시마 섬은 벌목이 금지 돼 대부분의 자연 상태의 원시림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수의 사슴과 원숭이가 살고 있고요. 나라현이 사슴으로 유명한데, 거기에서는 사슴을 먼발치에서만 봤지만(애들이 휠체어를 무서워해서...) 이쓰쿠시마에서 엄청 가까운 거리에서 사슴을 여러 번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사슴들은 태평양 전쟁 이후 미군의 사슴 사냥으로 씨가 말라 현재의 사슴들은 나라현에서 이송해 왔습니다. 추정치로 약 600마리의 사슴이 섬에 번식했으며 먹이 부족으로 관광객의 도시락 등을 먹어 골치인가 봅니다.
 

 

 

 

저만치 유명한 이쓰쿠시마 신사 도리이가 보입니다. 도로는 모래 같은 도로라서 약간 울퉁불퉁하고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합니다. 신나는 비트에 휠체어가 흔들려 꼬리뼈가 아팠습니다.

 

 

 

너무너무 예쁜 사슴이었지만 고개를 돌렸더니 바로 코앞에 있어 휠체어에서 일어날 뻔했네요 왜 인형처럼 거기 그러고 서있어?
 

 

 

 

미야지마 로프웨이 입구가 보여 로프웨이를 타야겠다! 하고 안내판을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실패했어요. 계단계단 계단이 너무 많아요~~~~~~~
 

 

 

 

단풍으로도 유명한 이쓰쿠시마는 바닥 맨홀도 아스팔트 바닥에도 단풍 그림이 많습니다. 빨강, 초록, 노랑.
 

 

 

 

이쓰쿠시마 섬에는 숙소도 많습니다. 료칸도 있고 수학여행 온 일본인 학생들도 많았어요.
 

 

 

 

밥을 먹기 전에 잠시 스타벅스에서 쉬어갑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스타벅스에 더 많이 갑니다. 아래는 스타벅스로 들어가는 경사로입니다. 입구가 바다 쪽, 바다 반대편 두 개가 있는데 휠체어는 반대편 입구로 들어가야 합니다. 바다 쪽 입구는 폭이 좁아서 내 휠체어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문이 두 개로 개방형인데, 한쪽은 잠겨있었다). 이 스타벅스는 2층에도 자리가 있는데 바다를 볼 수 있는 멋진 자리가 있어요. 엘리베이터도 있어 휠체어도 문제없습니다!

 

 

 

 

일등으로 들어가 말차라테 숏사이즈를 주문하고 호다다닥 1등으로 2층으로 올라갑니다. 어디에 앉을까 고민하다가 아래의 자리에 착석. 바다가 제일 잘 보이는 명당입니다. 친절한 직원이 말차라테를 직접 가져다주었습니다. 제일 좋은 자리에 앉으셨네요!라고 해주시니 더 기분이 좋습니다.

 

 

 

 

라테를 마시고 밖으로 나오니 그새 섬으로 들어온 단체 관광객이 엄청납니다. 아예 다른 동네가 되어 있습니다. 아침에 일찍 섬으로 들어와 여유 있게 풍경을 본 자신이 기특합니다. 이쓰쿠시마는 모미지 만주라고 해서 단풍 모양을 한 만주와 그 만주를 튀긴 디저트가 인기입니다. 상점가 거의 대부분이 그 만주 아니면 굴 요리를 팔고 있습니다. 만주만 해도 달 것 같은데, 튀긴 만주라니!

 

 

 

이곳저곳 상점을 구경하다가 미리 점찍어둔 굴 식당으로 향합니다. 타베로그를 보면서 골라뒀거든요. 벌써 오픈하자마자 자리에 앉아 먹고 있는 손님들이 있네요. 1층에 바 테이블이 전부라 휠체어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원래 스탠드석인 곳에서 그냥 먹었습니다. 휠체어에서 자리를 옮겨 앉을 수 있다면 바 테이블에서 먹는 게 좋겠네요.
 

 

 

 

제일 많이 주문하는 스탠다드 굴 정식. 여기에서 얼마를 추가하면 사이즈를 추가할 수 있다고 했지만 거절했는데, 그러길 잘했습니다. 충분히 양도 많고 배부릅니다. 구글 리뷰에선 가격에 비해 양이 적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직접 먹어보니 내 의견은 그 정도의 가격이 맞는 것 같은데요. 굴구이, 굴튀김, 굴밥, 굴 반찬에 굴 미소시루까지. 저야 워낙 굴을 좋아해서 하나하나 다 맛있었지만 진짜 온통 굴이라서 대체적으로 정식 자체가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나마 굴밥에 있는 미나리 같은 채소가 있어 입 안을 개운했어요. 더 산뜻한 디저트가 추가되면 좋을 것 같네요. 먹은 요리 중에서는 역시 굴구이가 제일입니다.

 

 

 

돌아올 때는 1층에도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배를 탔습니다. 앉아서 볼 수 있는 경치도 멋졌고 배 일층에 휠체어 접근 가능한 화장실도 잘 구비되어 있었다.

 

 

 

 

다시 미야지마구치 역에 도착해 스탬프를 쾅 찍었습니다. 섬을 데려갈 순 없으니 그림이라도 노트에 넣어갈게요.

 

 

 

 

바다 위의 이쓰쿠시마 신사! 하늘과 구름, 손에 한아름 가득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