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할 것 없는 도마코마이, 비마저 내리니 멀리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숙소와 같은 블록에 있는 일본 다방 커피엔 코우노(珈琲苑こうの)를 방문하기로 결정. 리뷰도 몇 개 없고 휠체어가 들어갈지 모르지만 숙소에 가만히 있기엔 축 처지는 날씨였다.

이곳은 오래된 다방답게 흡연이 가능했다. 들어가니 담배 냄새가 자욱하다. 1969(쇼와 44)년 3월 창업한 카페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도마코마이시 중심 시가지에서는 현존(영업)하는 가정 고급의 순차이다. 일본의 시를 대표하는 화가로 알려진 엔도미만의 그림이 카페에 가득하다. 그리고 그 그림의 주인공은 카페의 사장님이신 할머니.
카페의 이름은 코히엔코우노(고노). 고노가 뭔가 검색해 봤더니 일본의 성씨 중 하나였다. 그러면 할머니가 고노상이냐고 묻자 할머니가 맞다면서 자기가 고노상이라고 웃으셨다.

카운터석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는 도마코마이에는 아무것도 없어 라고 하셨다. 왜 사람들이 이곳으로 여행 오는지 잘 모르겠다고. 사실은 동감했지만 여기에 살 거라고 생각한 분들한테 그러니까요, 동조하기엔 멋쩍어서 그냥 웃었다. 나중에 도마코마이를 떠날 때 알게 된 사실인데 할머니도 여기 안 사시더라.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만나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꾸벅 목인사를 했다.
"이제 아무도 커피를 마시러 오지 않아." 할아버지가 말했다. "모두 벤또(도시락)나 먹지." 탄식 같은 그 말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당신이 이곳에서 주문할 수 있는 건 오리지널 커피 한잔 뿐이다. 뜨거운 것 아니면 차가운 것. 그 외의 옵션은 없다. 핸드드립은 맛있었다. 우유와 설탕도 취향껏 마음껏 넣을 수 있게 한가득 주셨다. 재떨이도 함께였다. 얼음이 동동 떠있는 차가운 물도 내어주셨다. 물이 줄어들면 다시 가득 채워준다.
담배 냄새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추천하지 않는다. 평소 같으면 나 역시 방문하지 않았겠지만 이 작은 소도시 도마코마이에서는 흡연과 비흡연을 고를 권한이 없다. 오히려 비가 오는 날 눅눅하게 젖은 담뱃재 향기가 카페와 잘 어울렸다. 그 순간 커피를 마시는 카페의 공간이, 커피의 향이, 눅눅한 그 공간이 필름처럼 뇌리에 깊숙하게 박혔다.



지나온 세월을 보여주는 오래된 메뉴판. 다양한 원두가 적혀있다.

카페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엔도미만의 그림. 카페가 할머니의 삶 자체를 담고 있다.



짧고 서툰 일본어로 할 수 있는 말이 많지않았다. 그러다 도시에 아이스하키 그림이 많았던 것이 생각났다. 도마코마이는 아이스하키가 유명한가요? 묻자 그렇다고 했다. 이곳은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아이스하키로 상을 받은 사람이 많다고.
따뜻한 커피와 차가운 물을 마시다보니 어느 순간 배가 사르르 아파와 자리를 떴다. 건강하세요. 커피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세요, 하고 인사하자 할머니도 키요츠케테, 웃으며 인사하셨다. 여기 와서 참 많이 듣는 말이다. 조심히 가라는 말이다.
옆자리의 할아버지는 카페를 처음 들어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갈 때도 휠체어가 제대로 나갈 수 있게 도와주셨다. 약간의 입구에 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그냥 단골이랑 오래 계시는 줄 알았는데, 내가 카페를 나간 다음에 숙소로 가다가 뒤로 돌아 다시 카페를 찍으려고 등을 돌리자 할아버지도 막 나오고 있었다. 도와주시려고 기다리던 게 아닌가 싶었다.


카페 안에 인형이 가득 올려져 사실 앉을 수 없는 1인용 테이블이 있어 여긴 뭐지,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엔도미만이 앉아 그림을 그리고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그림을 그린 작가의 자리를 인형으로 가득 채워넣은 것은 사실은 인형이 아니라, 작가에 대한 할머니의 애정이 채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소중한 사람이 앉은 소중한 자리에 타인은 앉을 수 없도록.

짧은 시간 말동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お大事に.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 > 해외탐방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트북 하기 좋은 삿포로 카페 (0) | 2024.11.21 |
---|---|
웰컴 투 하코다테 럭키 삐에로 (0) | 2024.11.19 |
하코다테역 카페 추천 (1) | 2024.11.17 |
다이마루 삿포로점 오픈런 정체는 (5) | 2024.11.16 |
국사무쌍을 만든 아사히카와 술창고 (7) | 2024.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