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오니기리를 찾은 다음엔 그 동네를 쫙 돌 예정이었는데 찬바람에 마음이 짜게 식어버렸다. 그남자그여자의사정에서 유키노랑 아리마가 걸었던 철학의 길이 이쯤이었는데. 초등학생 때 몇 번이고 다시 읽은 만화책 주인공의 시야를 직접 보는 그런 경험, 나도 하고 싶었지만...
그것보다 추운거 제일 싫어.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 가고 싶었던 우동집이 휴무라 좌절하고 가모 강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 너무 배고파 슈퍼 같은 초록색 로손에서 120엔 명란 오니기리 하나를 까먹었다. 생각해 보니까 왜 아오오니기리를 여기서 먹지 않았지? 내내 들고 다니다가 숙소에서 저녁밥으로 먹었다. 숙성시킬 셈이었나?
https://maps.app.goo.gl/igWkKeH1vihTFL328
Sanshiki Udon Restaurant · 2 Chome-9-4 Gojobashihigashi, Higashiyama Ward, Kyoto, 605-0846 일본
★★★★☆ · 우동 전문점
www.google.com
Sanshiki 우동집은 얕은 턱이었지만 도움이 필요했다. 직원분이 도와주셔서 들어올 수 있었다. 라임이 표면에 둥둥 떠있는 시원 향긋한 냉우동도 먹고 싶었지만 930엔 따뜻한 튀김우동을 먹었다. 동네 어르신 세분과 오픈시간에 맞춰 입장했다. 가격이 저렴한 대신 현금결제만 가능하다. 테이블이 네 개 정도 있고 계단 두 개 너머 위로도 테이블 몇 개가 있는 자그마한 동네 우동집이다.
사실 큰 기대 없이 시킨 덴뿌라 우동은 너무 너무 맛있었다. 나는 원래 국물에 적신 새우 튀김우동을 좋아하는데 국물에 적셔진 눅진한 튀김옷이 참 고소했다. 자가제면한 우동 면이라 더 쫄깃쫄깃하고, 튀김도 바삭하면서 부드러웠다.
약간 심심하다 싶을 때는 시치미를 조금 뿌리면 매콤해진다. 겉으로 보는 것과 다르게 그릇의 볼이 깊어서 양이 엄청 많았다. 전부 먹어 버렸다. 몸이 으슬으슬했는데 따끈해졌다. 감기가 머리 위에 잠깐 앉았다가 날아가 버렸다. 숙소와 가까웠으면 또 오고 싶었는데 굉장히 애매한 거리에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다음에는 냉우동을 먹어 보고 싶다.
오랜만에 콧물 나오게 먹었네.
우동을 먹고 나서는 가모 강 옆으로 쭉 내려갔다. 교토 여행을 계획했을 때 꼭 방문하고 싶었던 코무덤을 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코무덤에 도착했다.
https://maps.app.goo.gl/9iYVcr7GXN2idmhy7
귀무덤 · 533-1 Chayacho, Higashiyama Ward, Kyoto, 605-0931 일본
★★★★☆ · 역사적 장소
www.google.com
일본군은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의 명령으로 전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한반도에서 죽인 주검의 코를 베어서 교토에 가져왔는데, 그것을 모아서 무덤을 세웠다. 그게 바로 코무덤이다. 후쿠오카, 나가노현, 오카야마현, 스시마섬 등에도 귀무덤이 있다.
교토 코무덤은 1597년 9월 28일 세워졌다. 처음에는 코를 베어왔다며 코무덤이라고 했으나 너무 잔인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귀무덤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묻힌 희생자가 2만 명 정도라고 한다(林羅山の『豊臣秀吉譜』).
코무덤은 정말 평범한 주택 사이에 있었다. 바로 옆 놀이터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정말 평범하게. 그냥 우리 할머니 집 옆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이만 명의 코가 묻힌 무덤이 있었다. 저만치 우람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받드는 도요쿠니 신사의 근처에서 그렇게 방치돼 있었다. 하늘의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구름이 몰려들었다.
잠시 머무르다 해가 지는 방향을 따라 다시 걸었다. 가라스마오이게역 아래 스타벅스 리저브에서 따뜻한 드립을 주문했다. 쌀쌀한 날씨에 다시 몸이 으슬으슬했다. 원두는 마이크로블렌드 No.21을 주문했다. 일본에 온 후 스타벅스나 다른 카페에서 커피 추출 방법 중 하나인 사이폰을 여기에서 처음 봐서 신기했다. 마치 마법약을 끓이는 것과도 같은 비주얼이다.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 > 해외탐방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토에서 온 꽃편지 (0) | 2024.06.16 |
---|---|
현지인 라멘거리에서 지라시 스시 포장하기 (1) | 2024.06.16 |
요새는 주먹밥도 인스타 DM으로 산다고? (0) | 2024.06.14 |
카페오레 말고 진짜 라테가 먹고 싶다면 (0) | 2024.06.13 |
아라시야마 대나무숲, 구글맵 보지 않고 걸어보기 (1) | 2024.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