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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해외탐방기

수화물 휠체어 파손, 타국에서 긴급 출장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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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 제2터미널 지하 2층에서 구글맵을 통해 최적경로를 검색한 나는 마침내 오늘은 시즈오카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내가 계획했던 플랜으로는 적어도 저녁 7시에는 나리타에 도착했어야 했지만 저녁 9시 10분을 넘어섰다.

지하철이든 기차든 그 어느 것도 오늘 나를 데려다줄 수 있는 교통기관은 없었다. 오늘 시즈오카가 아닌 나리타 공항에서 나를 한숨 눕게 해 줄 침대부터 구해야 했다.

일본 한 달 여행을 위해 숙소를 예약하면서 도쿄역 500m 근처에 토요코인 지점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바로 도쿄 야에스 지점. 토요코인 공식 홈페이지로 접속하자 다행히 휠체어 객실룸인 하트풀싱글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1박 가격으로 약 11,000엔을 결제했다.

그 와중에 미리 연결해 두었던 e심은 작동하지 않았다.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일정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끊어지는 나리타 공항 Wi-Fi에 간절히 의지해야만 했다.

그리고 넥스 전용 매표기에서 한국 현지에서 메일로 받은 QR코드를 체크한 후 직원에게 시나가와역 전전역인 도쿄역에서 내리고 싶다고 했고, 슬로프(기차에 탑승할 때 간격이 크면 설치해 주는 경사로)를 부탁했다. 직원은 이미 내가 예매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다시 결제해야 한다고 했다. 현금으로 결제한 데다가 표도 도쿄역에서 반납해 정확하진 않지만 약 1,500엔 정도였다. 넥스는 다른 편을 타도 그냥 그 표로 타면 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목적지를 바꿨기 때문인가! 1,500엔이 아까웠지만 슬픔을 뒤로하고 도쿄 역에서 내린 다음에 호텔로는 어떤 경로로 가야 가장 빠른지 검색했다.

교통, 숙박을 완료했다고 생각한 나는 잠깐 기다리라는 직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비행 지연에 숙소 이동 실패까지, 생전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었지만 이만하면 됐다. 잘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넥스를 탈 시간이 왔을 때 나는 발견했다.

왼쪽 바퀴에 바람이 하나도 없다.

낑낑거리며 오른쪽 바퀴 힘만으로 가는 휠체어는 금방이라도 바퀴가 빠질 것처럼 덜컹거렸다. 전동으로 움직이자 찌이익 찌이익 바람이 다 빠진 바퀴가 우는 소리를 냈다. 언제부터 그렇게 슬프게 울고 있었던 거야? 나는 지금 세관까지 통과했단 말이야… 울려면 휠체어 받자마자 더 크게 울었어야지 바보야…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나의 내면은 폭발했다. 슬로프와 함께 온 나이가 있으신 역무원분께 우는 얼굴을 하며 바퀴를 보여주었다. 👮‍♂️펑크 났네!!! 🐸네 펑크 났어요ㅠㅠ 👮어쩌지!!! 🐸혹시 에어펌프 있을까요ㅠㅠ 👮아어쩌나!!!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사라진 역무원은 땀을 흘리며 뛰어오셨다. 발로 밟고 양손으로 공기를 주입하는 에어펌프를 들고. 우리는 바퀴의 공기주입구에 에어펌프의 접합부를 연결했다. 역무원 선생님은 힘차게 양손으로 공기를 주입했다. 쉬이익. 쉬이익. 바람이 들어가자마자 곧 빠져버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절망했다. 다른 바퀴와 비교해 보니 있어야 할 부품이 사라져 있었다. 단순히 공기를 넣어서 많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주입구 부분에 있어야 할 부품 자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니면 부품이 있어도 바퀴 자체에 구멍이 생긴 걸 수도 있었다.

역무원도 당황했고 나도 당황했지만 곧 마지막 넥스가 도착했다. 어쩌지 어쩌지 하면서 슬로프를 설치해 주었고 일단은 나도 도쿄역에 가서 상황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쩌억쩌억 소리가 나는 바퀴로 넥스에 탑승했다. 계속 미친 듯이 구글링 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하긴 했지만, 사진도 한 장 없긴 하지만, 비싼 만큼 깨끗하고 좋더라…

그 와중에도 e심은 작동하지 않았다. 넥스의 와이파이에 나의 메일주소와 이름 등 정보를 팔며 ‘도쿄역 자전거 수리’, ‘도쿄 휠체어 수리’, ‘도쿄 자전거 출장’ 등등 키워드로 미친 듯이 검색했다. 손가락이 저렸다. 하지만 그 어떤 곳도 저녁까지 영업 중인 곳은 없었다. 우선 홈페이지가 있고 메일 주소가 있는 자전거 수리점, 휠체어 수리점에 같은 내용의 메일을 쐈다. 내가 묵는 호텔은 어디고, 나는 내일 최대한 빨리 수리가 필요하고, 바퀴의 상태는 어떻다 이러쿵저러쿵. 네 군데 정도 보내고 전화번호를 캡처했다. 나는 일본말을 할 줄 모르는 노란 외국인이었다. 나도 모르게 폐부 깊은 곳에서 한숨이 계속 터져 나왔다.

바퀴가 터졌음을 알았을 땐 울고 싶었고 하나는 바람이 아예 없는 상태로 도쿄역에서 호텔로 향할 때는 산소호흡기가 떨어졌을 때만큼 무서웠다. 사실 한쪽 바람이 빠지면 오롯이 나머지 바퀴 힘으로 가는 거라 정말 위험하다. 멀쩡한 바퀴도 터질 수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넥스고 스카이라이너고 나발이고 택시를 불러서 호텔로 바로 가야 하는 게 안전에 있어서 맞지 않았나 싶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한번 더 절망했다. 내가 가본 곳 중 제일 작은 토요코인이었고 직원은 한 명이었다. 다행히 한국말을 할 줄 알았다. 제대로 체크인을 하기도 전에 캡처해 놓은 전화번호를 보여주며 수리 업체에게 전화해 줄 수 있냐고 말하자 피곤함이 직원의 얼굴에 스쳤다.


야 귀찮은 표정 하지마 나도 너 귀찮은 거 알아. 근데 좀 도와주라… 그 표정에 울고 싶었지만 여러 번 부탁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결국 저녁엔 부르지 못했다. 직원은 업체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더 찾아보겠다고 했지만 난 직감했다. 그녀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찾지 않을 것이다. 피곤해서 기절할 것 같았지만 계속 구글링해 업체 몇 군데에 메일을 더 보내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참, 이번 토요코인은 역대급 작았다 고시원 수준. 다음엔 절대 묵지 않으리…


여행을 다니며 위탁수화물로 붙인 휠체어가 파손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벌써 세 번째다. 처음은 6년 전 휠체어 브레이크가 부러졌던 아시아나항공, 두 번째는 올해 2월 배터리 커버를 타노스한 대한항공, 세 번째는 바퀴 부품을 날린 에어프리미아. 최악은 바로 이번 케이스다. 첫 번째, 두 번째는 여행을 멈춰버리는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다리 한 짝으로 호텔까지 걸어가라니 누군들 울고 싶지 않겠는가.

수화물 파손이 발생했을 때에는 각 항공사에서 설정한 기간 내에(보통 7일) 파손 신고 접수를 먼저 해야 한다. 한국에 돌아가서 신고해야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대한항공 때는 배터리 코드 접합 부분의 커버가 부러졌다. 배터리가 두 개였기 때문에 이튿날 발견했다. 사실 규정상 리튬이온 배터리는 승객이 기내 탑승 시 들고 탑승해야 하는데, 당시 기내 허용 용량 초과로 하나는 휠체어와 함께 위탁수화물로 보내야 한다는 직원의 말에 그렇게 휠체어에 꽂은 채로 보냈다. 그러나 위탁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휠체어와 함께 보낸 배터리의 덮개는 사라진 채 돌아왔다. 솔직히 좀 짜증 났지만, 배터리의 덮개가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고 물만 안 닿게 조심하면 되는 거니까 하고 넘어갔다. 실은 지금은 후회한다😀 그냥 파손 신고 할 걸 배터리도 새 거였는데(150).


수화물 파손을 접수할 때는 파손된 물품 사진, 수화물 태그 번호가 있어야 한다.

다음날 아침 알림이 아닌 구글 이메일 도착 소리에 잠이 깼다. 어제 날린 비둘기들 중 하나였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며 메일을 열었다. 일본어 번역을 눌렀다. 절망했다.


ㅠㅠ

ㅠㅠㅠ
ㅠㅠㅠㅠㅠ

첫 번째 비둘기는 나에게 다른 대안을 떠오르게 했다. 정말 아무도 출장을 와주지 않는다면? 10시까지 체크아웃해야 하는데? 시즈오카 가야 하는데?


우선 늘 상비하고 다니는 30cm 정도 길이의 수동 에어펌프로 바퀴에 공기를 최대한 넣고 관절 압박밴드로 꽁꽁 감쌌다. 에어펌프를 푸는 순간 마개를 꼽기도 전에 풍선에 바늘 꽂아 넣듯 바람이 터져버렸기 때문에 임시방편이었다. 그렇다고 에어펌프를 꽂고 행인들의 종아리를 때리며 이동할 순 없었기에 최대한 바퀴 안쪽으로 바큇살에 걸리지 않게 돌돌 말았다.

9시 즈음 수리하는 것을 포기하고 도쿄역에서 시즈오카역으로 향하는 신칸센을 타기 위해 체크아웃 준비를 끝냈을 즈음 룸의 전화가 울렸다.

수리기사가 왔다는 전화였다! 내 비둘기에 따로 답장 없이 바로 출장을 와준 것이다. 자전거 판매와 수리를 하는 회사였다. 사실 인사를 하면서도 하도 많이 자기 전에 메일을 뿌려 어딘지도 몰랐다. 로비도 좁아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나는 오늘은 기뻐서 울고 싶었다. 좁고 작고 불편한 도쿄 토요코인에서 임시조치라도 문제를 해결하고 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조그만 로비 구석에서 영어를 못하시는 수리공분과 우리나라말 밖에 못하는 우리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내가 꽂아놓은 주압기를 다시 풀고 바디랭귀지로 표현하자 부품을 이것저것 가져와 교체해 주었다.

앞으로 일본 여행이 한참 남았기 때문에 걱정 많은 나는 재수리 예정이다. 끼릭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고장 나지 않았다고 생각한 다른 쪽 바퀴도 갸우뚱하더니 한번 더 봐준 수리공은 홀연히 떠나갔다.

참고로 아직까지도 고장 즉시 에어프리미아에 파손 신고를 했지만 계속 대답만 바꿀 뿐 확실한 대안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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