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징기스칸을 찾았는데 좀 멀어

 

成吉思汗ダイニング ゼロイチ(징기스칸 Dining01). 문 앞에 작은 턱이 하나 있었는데 도움을 청했다. 사실 다른 곳으로 가고 싶지도 않고 알아볼 힘도 없어서 그런 거지만…

카운터석 한가운데에 앉았다. 예약 없이 왔다고 구석자리에 앉히는 게 아니라 세심한 주의가 느껴지면서도 약간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키친과 나 사이에 눈앞에 와인병들이 네다섯병 나열돼 있어 시야가 가려져서 편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일부러 그렇게 세팅한 게 아닐까 싶다. 가게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면서 세팅을 뭔가 한참 하는 느낌이었는데 와 센스. 놀랍다.

 

가게는 카운터석 외에도 4인석 등 자리가 다양하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뭔가 어색한 분위기도 했지만(계속 스태프들의 눈동자의 방황이 느껴짐ㅎㅎ) 깨끗하고 세심하고 주방도 들여다 보이는데 정말 깔끔했다.

센스 있는 소품들, 양고기 집인데 기름하나 튄 지국이 없는 게 이곳이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게 실감 났다.

로스 이인분과 야채모둠, 그리고 삿포로 생맥주 한 잔을 시켰다.

야채모둠은 가지, 애호박, 쑥갓, 버섯 두 종류, 야콘, 방울토마토, 꽈리고추. 그리고 고기에 곁들여 나온 양파. 사실 늘 먹던 고기의 1인분은 1인분이 아니니까 이것 먹고 다른 부위도 먹어봐야지! 하고 시켰는데 고기가 지인짜 많아서 당황했다.

사실 야채가 먹고 싶었다. 구운 야채 홋카이도는 채소도 유명한데 여기 와서는 계속 잔뜩 탄수화물만 먹었으니까 질려있었다. 야채가 하나하나 너무 달콤하고 본연의 맛이 살아 있어서 너무 좋았다. 야콘의 아삭함, 방울토마토의 새로운 매력을 알았다. 쑥갓도 이렇게 구워 먹을 수 있구나 하는 점도.

고기 몇 점이 더 남았을 때 쑥갓과 야콘, 와사비 간장 소스를 추가했다. 간이 된 야키니꾸보다는 고기의 맛을 그대로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고기도 잡내 하나 없이 부드럽다. 일본 여행 중 처음으로 진실의 미간을 찌푸리게 됐다.

추가한 쑥갓은 한 접시 수북하게 왔다. 냄비 가장자리에 쑥갓을 둥그렇게 올려 살짝 열을 가해 숨이 죽으면 꺼내서 구운 고기와 함께 와사비를 올려 먹으면 된다. 야콘은 한국에서 먹지 않는 채소라 오독오독 계속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와사비 간장 소스는 첫 추문 때 같이하자! 생각보다 양이 많더라. 맵지 않고 적당히 알싸해 고기와 잘 어울렸다.

이날이 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됐었는데 그동안 먹은 식사 중 가장 기억에 남고 만족스러운 식당이었다.

이렇게 배부르게 먹고 5,643엔 나왔다. 잘 먹었습니다, 어디서 왔나요, 한국이요, 안녕히 계세요!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머리와 몸이 양고기 냄새에 절여졌지만 비틀비틀 기분 좋은 술기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