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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커버린 원숭이가 부르는 노래

사랑둥이 3박 4일 임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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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차, 첫 만남
점심에 도착한 순백이는 한 시간 내내 쉬지 않았다. 작은 원룸을 왔다 갔다 하며 냄새도 맡고 침대 위에 앞발을 올렸다가 바깥 창문도 구경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본다.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나서야 쉬는 공간에 놓아준 간식을 짭짭거리며 먹더니 노즈워크에 숨겨둔 간식도 해치웠다.




원룸이라 공건이 작다 보니 쉬는 공간도 사람과 거리가 멀지 않아 계속 주변을 맴돌았다. 손을 뻗어 냄새를 맡게 해 주면 조심스럽게 다가와 촉촉한 코끝이 닿는다. 두어 번 냄새를 맡고 다시 뒷걸음질로 멀어졌다. 멀어지고 나서도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면 쳐다보고 있고 눈이 마주치면 먼저 눈을 피한다. 시선 마주치고 있기가 아직 두려운 아이다.




털갈이를 시작한 순백이의 구불구불한 솜털이 푸슝푸슝 가습기의 뿜어내는 물기와 함께 날아다닌다. 저녁즈음엔 익숙해졌는지 편의점에서 사 온 군고구마도 꿀떡꿀떡 잘 받아먹고 물도 두 번이나 갈아줄 때마다 잘 마셨다. 덕분에 나도 진짜 오랜만에 군고구마 먹었다.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넌 아이 이후에 저녁 주방에서는 고구마 찌는 냄새가 사라졌었다.
 
저녁엔 창문 쪽에 웃풍이 들어와 보일러 온도를 올려서 집이 좀 더운 편이라 시원한 물로 갈아줬다. 물을 갈아줄 때마다 시원한지 꿀떡꿀떡 가득 채운 물을 반 정도 마셨다. 그렇게 잠들기 전까지 물리필만 세 번 해주고 잠들었다. 👍💯




2일 차, 호감 사기
아침 6시 30분쯤 깼다. 컬리에서 주문한 간식 이것저것 줘봤지만 황태포 x 딸기 x 당근 x… 어제 먹고 남은 고구마도 오늘은 거절했다. 펫밀크도 한팩 구매했는데 정말 꿀떡꿀떡 설거지까지 하며 잘 먹었다. 역시 우유 싫어하는 강아지 못 봤다. 어제도 물도 충분히 잘 먹길래 우유만 주면 물을 안 먹을까 봐 정해진 양만 줄 생각이다. 오전에 우유를 맛있게 먹고 처음으로 똥도 쌌다. 아침에 가족이 출근 준비하다가 욕실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를 내자 깜짝 놀라선 순식간에 침대 위로 올라갔다. 어제 왔을 때부터 침대에 앞발을 입고 서서 창가를 구경하더니 역시 순백이 점프력 있을 줄 알았다.

내려오라고 말하지 않아도 바로 호닥 밑으로 내려왔다. 침대에 눕거나 노트북을 하는 듯한 고정자세를 취하면 근처에 앉아 눕고, 움직이면 뱅글뱅글 동선을 바꾸며 계속 따라왔다.




직업이 귀여움이라더니 특기는 사랑스러움인 순백이… 이렇게 얌전하고 조용하고 발소리도 작은 개는 처음 봤다. 등부터 쓸어주면 머리도 긁긁 하게 해 주었는데 털이 너무너무 보드랍다. 겉털은 뾰족뾰족 윤기가 흐르는 털이고 속털은 구불구불 ☁️구름솜 털이다.

10시. 이른 기상으로 다시 잠든 나는 순백이의 끙끙 거리는 소리에 깼다. 깊은 꿈을 꾸는지 앞발도 허우적거리며 작게 몽! 몽! 짖거나 끙끙거리고 있다. 분홍색 배가 숨 쉴 때마다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아침에 배달온 신선한 소고기 안심 300g 중 100g만 떼어내 끓는 물에 삶았다. 지방도 없고 부드러운 살코기가 되도록 결 반대로 먹기 좋게 잘라 그릇에 담았다.




고기가 식는 동안 남은 고기에 올리브유와 소금을 뿌리고 앞면 뒷면 옆면 골고루 익히고 아스파라거스와 미니 브로콜리도 들들 볶았다. 이건 내 밥.




내 밥 소백이 밥을 각각 완성시켜 밥그릇에 담아 주었는데 밥그릇으로 다가가지 않아 한 점 한 점 손으로 맥였다. 와앙 크게 한입 벌려 고기를 낚아챌 만도 한데 고기를 잡고 있는 내 손가락이 다치지 않도록 고기만 쏙쏙 빼먹는 게 신기했다. 보통 이렇게 밥을 주다 보면 애들 🦷이빨이 손가락에 많이 닿는데 거의 이빨이 닿지도 않았다. 어제 남긴 고구마랑 고기 한 점을 겹쳐 삼합이야 하면서 싸주니 고구마도 잘 먹었다.




세척한 당근 10개를 식칼로 일일이 하나씩 채 써는 동안 칼질 소리에 놀랄까 걱정했는데 식탁 건너편에서 나에게 눈을 떼지 않고 계속 가만히 지켜보다 엎드려 잠이 든다. 당근을 채 써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떨어지지 않는 검정 바둑알이 느껴졌다.




그렇게 쳐다보면서 졸기를 반복하더니 드디어 한 시간 정도 되자 푸😮‍💨 한숨을 쉬곤 옆으로 드러누웠다.




볼록 올라온 배가 빵빵해 보인다. 어제부터 잠을 자긴 자는데 중간중간 화장실을 가거나 움직이면 여지없이 깨서 일어나던데 3박 4일이 가기 전에 하루정도라도 푹 자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또 자다가 시계를 보니 다섯 시 반이길래 슬슬 6시 되면 밥 줘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화장실을 나온 나에게 끙끙끙 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밥 달라고? 하니까 꼬리가 붕붕붕.

어제 준 것처럼 사료에 밥그릇을 가득 채우고 츄르 두 개를 짜서 비벼줬는데 반을 남겼다. 소고기 맛있었네 이 녀석… 딱 소고기 준만큼 남긴 거 같다. 물도 어제보다 덜 마시는 것 같아 우유 소주한컵을 섞어줬더니 물그릇 밑바닥까지 설거지해 버렸다.




가족이 퇴근 후엔 갑자기 옆에 챡 달라붙었다. 어제도 본 사람이잖아, 저녁에 너 고구마 사다준 사람이야.라고 말해도 겨우 하루 같이 더 있었다고 옆에 숨는 게 너무 웃기고 귀엽다. 둘만 있을 때도 늘 일정거리를 유지하더니 의지하는거 보소

떨어지지 않는 감기로 늦은 새벽까지 속이 안 좋아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했고 그때마다 순백이는 잠에서 깨 바둑알 눈으로 쳐다봤다. 자꾸 깨운 게 미안해 황태포 하나를 꺼내 내밀었지만 처음보단 몇 번 더 냄새를 맡다가 역시 닭가슴살 육포처럼 물어가지 않는다.



그래 너 편할 때 먹어라, 하고 순백이 이불에 올려놓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는데 채 다 덮기도 전에 와작와작와작. 고요한 새벽의 어둠 속에 울리는 바삭바삭한 황태 씹는 소리… 역시 맛있지? 순식간에 와삭와삭 다 먹고선 혹시 노즈워크에 남은게 없는지 텅 빈 노즈워크 킁킁 댄다. 순백이 바보… 🐶 귀여운 바보. 내일은 사료 다 먹으면 닭안심 삶아줄게 🐔





3일 차
🏥어제 새벽 컨디션이 좋지 않아 아침 일찍 일어나 병원에 다녀왔다. 동네의원이라 한 시간이면 될 줄 알았는데 수액까지 맞고 돌아오니 벌써 세 시간 가까이 지났다. 현관문을 여니 순백이가 훙훙훙 하면서 반겨줘서 기뻤다. 얌전히 기다려준 상으로 간식 두어 개를 챱챱 먹였다.

새벽 내내 잠을 설쳐 피곤해 바로 침대에 누웠는데 순백이가 침대에 올라왔다. 놀랐지만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며 엎드리길래 그래 그 자리가 제일 시원하지💨 나도 스륵 잠들었다.

어느 순간 눈을 떴는데 순백이가 얼굴을 내쪽으로 향한 채 도롱도롱 잠들어 있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있다니.

미간과 앞발을 슬슬 쓰다듬었다. 해가 저물고 달이 떠오르기까지. 호박죽에 푹 퍼진 새알심처럼 뼈마디가 노곤해진다. 오랜만에 행복했다. 네 덕분에.




그리고 저녁시간이 돼서 곧 돌아올 가족과 순백이 밥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늘 순백이 밥은 삶은 🍗닭안심에 사료 섞어주기. 닭고기 삶은 냄새에 제 것인 줄 알고 꼬리를 붕붕붕 입으로 끙끙끙 소리를 낸다. 닭고기가 식기를 기다렸지만 바둑알 세 개 붙은 안달 난 얼굴을 보니 내가 너보다 더 못 참겠다. 엄지만 하게 잘라 호호 불어 한입주자 덥석 받아먹는다. 그다음 사료 한알을 줬다. 당연히 안 먹는다. 엄지손톱 크기로 자른 닭안심에 사료를 끼워줬더니 덥석 받아먹는데 입에서 사료 한알이 바닥으로 툭😫. 다행히 다시 주워먹었다😍.

고루고루 잘 먹을 수 있도록 적당히 식은 안심과 사료를 겉절이 담그듯이 버무려 주었다. 놀랍게도 사료 다섯 알 빼고 다 먹었다! 확실히 점심을 안 주고 한 끼로 줘야 밥 한 그릇을 다 먹는다. 그렇게 들여온 습관이 있기에. 본인의 양이 차면 더 이상 먹지 않는다.

어제보다 물 먹는 양이 적어서 물그릇에 🥛우유 두 숟가락을 풀어줬더니 완샷했다. 우유 버릇 들여가면 안 되는데….

지금은 침대가 순백이 거가 돼버렸다. 거기 내 자린데 😌… 거실에서 티비와 노트북을 하는 가족들을 관찰 중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고 있다. 배가 따듯한 낮잠 중…



4일 차, 작별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니 옆에서 자기 이불 위에 자던 순백이도 기지개를 쭈욱 켜며 일어난다. 둘째 날 아침까진 소변이 샛노란 색이라 물먹는데 신경 썼더니 새벽에 여러 번 싸고 소변 색도 점점 맑아져서 마음이 놓인다. 💩응가도 아침마다 잘 쌌다.

여전히 딸기🍓는 받아먹지 않는다. 손톱만큼 줘도 킁킁하더니 물러선다. 새로 나온 품종인 동백향 🍊귤을 잘라줘 봐도, 신맛은 없는데 노놉 내 스타일 아니야🐶 반응… 두 개 다 신맛 없이 단맛이 가득한 과일인데 할짝해주개,,

오늘은 털을 빗겨보고 싶어서 주변을 맴도는 순간을 포착해 머리를 긁긁 만져주다가 빗을 보여주고 손이 닿는 먼 거리에서부터 🪮빗질을 시작했다. 바닥에 앉아서 하면 훨씬 수월할 텐데 휠체어를 타고 빗질을 하다 보니 양사이드를 골고루 하기 쉽지 않다. 한쪽면을 빗고 빙그르르 반대편으로 유인한다음에 슥슥슥. 귀여운 ⛄️눈사람 털뭉치 하나가 완성됐다.


한 김에 용기 내서 물티슈로 엉덩이 닦기도 성공했다. 얏호👏

여전히 탁 하는 소음엔 놀란다. 집에 가습기가 하루종일 돌아가고 있는데 물통이 덜컹하는 소리에는 아직도 놀란다. 차이가 있다면 처음엔 놀라 일어났지만 이젠 누워서 가습기를 쳐다보는 정도?

오피스텔이라 현관문 방음이 안 되는 편이라 밖에서 사람 소리가 나면 귀를 쫑긋하며 현관 쪽을 쳐다본다. 하지만 헛짖음도 없고 문에 찰싹 달라붙어 있지도 않는다.

다만 휴대폰을 하다가 자세를 바꾸거나 바로 앞에 있는 노트북 마우스를 만지거나 하는 작은 부스럭 소리에도 고개를 들어 쳐다본다. 소백이가 온 이후로 모든 행동을 처언천히 움직이고 있다. 🐶 편하게 자리에서 코골아주개,,,

순백이 오른쪽 눈 속눈썹은 갈색이고 왼쪽눈 속눈썹은 흰색이다. 눈곱을 떼줄 때도 얌전하다. 식탐이 없어 정해진 양만 먹는다.




순백이 왼쪽 귀엔 사랑이 있다




마지막 밥으로 안심 기름 없는 부위를 삶고 닭가슴살 츄르, 사료를 비벼주니 몇 알 남기고 싹 비웠다. 조용히 이별을 준비한다. 꿈같은 4일 동안 너를 만나서 행복했어. 좋은 영원한 가족이 생기길 소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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