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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존재 유무는 인간을 분류하는 근본적인 기준 중 하나이다. 우리는 흔히 사회적 지위와 열정, 지능, 욕망, 기회 등을 기준으로 사람을 구별하지만, 나는 지능이나 인종, 심지어 성별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양심의 존재 유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빌붙어 사는 소시오패스와 이따금씩 편의점이나 털면서 사는 소시오패스, 아니면 악덕 자본가로 살아가는 소시오패스가 정말 서로 다를까? 아니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모두 똑같은 소시오패스일 뿐이다. 상식적인 기준으로는 단순한 악당과 소시오패스 살인마를 구별할 수도 없다. 보통 사람들과 소시오패스를 구별할 수 있는 분명한 기준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모든 기능 중에서 가장 성숙된 기능인 '정신'에 텅 빈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중략)
가장 난감한 문제는 따로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언급되는 일조차 별로 없다. 소시오패스는 그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까? 소시오패스는 과연 장애일까, 아니면 단지 기능적인 문제일까? 그 반대 측면의 불확실함 역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과연 양심은 양심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아니면 사이코패스들의 말처럼 양심이란 그저 대중을 가두는 심리적 울타리에 불과한 걸까? 드러내 놓고 말하던 하지 않든 간에, 수천 년간, 그리고 바로 지금까지도 전혀 도덕적이지 않는 사람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런 의문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미 오늘날의 세태에서는 남을 이용하는 행위가 만연해 있으며 비양심적인 사업 관행이 무한한 부를 낳는 듯하다. 개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누구나 살아가면서 부도덕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례를 경험하였고, 정직하게 사는 건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남을 속이는 사기꾼과 착하기만 한 사람 중, 결국 성공하는 건 어느 쪽일까? 정말 파렴치한 소수가 세상을 주무르게 될까? 바로 이 질문이 이 책의 핵심 주제이며, (중략)...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들어가는 말 29p ~ 33p
권력자는 전쟁터의 군인은 물론 본국에서 근무하는 군인에게도 당시 치르고 있는 전쟁이 선과 악의 결정적인 투쟁 또는 신성한 투쟁이라는 메시지를 어떻게든 전달하려고 애썼다. 이는 전쟁에 참전한 양쪽 모두의 권력자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행태이며 역사상 모든 주요한 전쟁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중략)
보통 사람을 살인자로 만드는 방법을 심리학이 제공하고 군대에서 이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나쁜 소식의 이면에는 칠흑 같은 바다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한 조각 희망이 존재한다. 자신이 천성적으로 살인기계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제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아주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도 종종 총을 쏘지 않거나 표적을 일부러 빗맞힌다. 권위에 짓눌려 침묵할 수밖에 없는 때가 아니라면 살인을 하지 말라는 양심의 목소리가 언제나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 목소리는 인간적인 유대감의 절규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3장 양심이 잠드는 순간 115p ~ 116p
신문기사는 보통의 인간인 우리를 큰 충격에 빠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런 행동이 '인간 본성'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들이 진정 인간 본성 때문에 일어났다면 보통의 인간인 우리가 기사를 읽고 충격에 빠질 리 있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 최악의 행동은 정상적인 인간의 본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렇게 여긴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모욕하고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일이다. 정상적인 인간의 본성은 질서 속에서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식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른다. 물론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텔레비전에서 보았거나 혹은 살면서 겪을 수도 있는 진정한 공포는 절대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며, 그런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과는 아주 다른 무엇 즉, 냉혹하고 완벽한 양심의 결핍이다.
내가 보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보통 사람과는 달리 특정 개인이 파렴치한 본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평소의 행동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어두운 면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생각을 인간 본성의 '그림자 이론'이라고 부른다. 그림자 이론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어떤 사람이 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도 모두 잠재적으로는 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말하자면 죽음의 수용소 소장이 될 수 있다는 식이다. 솔직히 그런 특수한 상황이 무얼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선량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이 극단적인 이론을 아주 쉽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절대적인 도덕적 암흑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고 인정하는 것보다 누구에게나 떳떳지 못한 구석이 조금은 있다고 믿는 편이 가혹하지 않고 더 민주적으로 느껴지기는 한다. 일부 사람들에게 양심이 없다는 말과 그들이 사악하다는 말이 엄밀한 의미에서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놀라울 만큼 비슷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선량한 사람들은 악의 화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절대 믿으려 들지 않는다.
비록 누구나 죽음의 수용소 소장이 될 수는 없겠지만 심리적 부정과 도덕적 배제,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에 사로잡히면 사람들은 그런 끔찍한 행동을 묵과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럴 수 있다. 누군가 아인슈타인에게 사람들이 이 세상을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는 점에 대한 의견을 묻자 아인슈타인은 "이 세상이 살아가기에 위험한 곳인 이유는 사악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막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파렴치한 사람들을 제지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려면 먼저 그들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양심이 없고 우리의 재산과 안녕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그 사람들을 실생활에서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을 믿을 수 있는지 판단하려면 보통은 그 사람을 오랫동안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소시오패스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더 깊게 관찰해야 하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그들을 피하기 위해 먼저 그들을 오랜 기간 동안 잘 알아 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잘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 긴급한 질문이 남는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구를 믿지 말아야 하는 가가 맞겠다.
나는 거의 25년 동안 환자들로부터 그들의 삶을 침해한 소시오패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누구를 믿지 말아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사람들은 보통 사악함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행동이나 단편적인 보디랭귀지, 또는 위협적인 말투 같은 걸 기대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은 쓸 만한 정보가 아니며 믿을 것이 못된다고 확실하게 말해 준다. 그래서 나의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워한다. 소시오패스를 알아볼 수 있는 최고의 단서는 바로 동정 연극이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그들은 보편적으로 두려움을 자극하기보다는 동정심에 호소한다. (중략)
동정과 연민은 선량한 이들이 발행한 사람들 즉, 그럴 만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베풀고자 할 때 필요한 동력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처럼 동정과 연민을 받을 자격이 없는 이들이 우리에게서 이런 감정을 억지로 짜낸다면 이는 분명 무언가 잘못된 것이며 간과하기 쉬운 위험 신호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잠재적으로 매우 유용한 신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매 맞는 아내의 이야기는 이를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사례이다. 아내를 때린 후 소시오패스 남편은 이내 식탁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쥔 채 신음소리를 낸다. 그러고는 자기 자신을 억제할 수 없으며, 아내에게 불쌍한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말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례들이 수없이 많은데 폭력 남편보다 훨씬 파렴치한 경우도 있고 거의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경우도 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뻔뻔한 상황인데도 양심적인 사람들에게는 감정적으로 다르게 보이는 듯하다. 동정을 구하는 모습이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이면에는 반사회적인 행동이 감추어져 있는데도 말이다. 양심 없는 그들의 방해로 사람들은 더 중요한 상황의 이면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6장 소시오패스를 알아보는 방법 176p ~ 1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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