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험생일 때, 매일 아침에 나가서 해가 지고 어둑어둑 해지면 돌아왔다. 나에게 겨울은 유자차(유자당절임)의 계절이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달달 떨며 조용히 불 꺼진 집 문을 열고 들어와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고, 설탕만 가득 들어간 영양가 없는 유자차병 뚜껑을 열었다. 매일 저녁 귀가 후 하는 패턴이었다.
솔직히 대충 때운 점심에 저녁까지 쫄쫄 굶어 밥이 더 급했지만, 그냥 저 달기만 한 설탕 덩어리 유자차를 어서 빨리 마시고 싶었다. 뜨거운 머그잔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웅크려 있고 싶었다. 어두운 집 안에서.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 포트를 놔두고 내 머리 반만 한 머그컵을 꺼내 유자청을 한 숟가락 푹 뜬다. 컵에 옮겨 닮고, 또다시 한 숟가락을 푹 뜬다. 보기만 해도 단 유자청이 숟가락 아래로 뚝뚝 흘러내렸다.

한 숟갈, 또 한 숟갈. 머그컵이 유자청으로 묵직해질 때까지 퍼담는다. 숟가락에 묻은 유자청을 한 입 쪽 빨아먹고 나면, 포트가 탁 하고 소리내며 꺼진다. 머그컵 가득 뜨거운 물이 채워지면 온기 없는 서늘한 집안에 달디 단 유자차 냄새가 확 퍼진다. 숟가락으로 몇 번 휘젓고, 호호 불어 한 모금 꿀꺽 삼킨다. 그러고 나면 밖에서 잔뜩 경직되었던 몸이 그제야 이완된다. 부엌 싱크대 옆에 서서 멍하니 홀짝홀짝 유자차만 마신다. 반절 정도 비우고 나서야 집안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오롯이 부엌 형광등만 켜져서 집은 안 켜진 것만 못하게 더욱 어두워 보였다.

그럴 때 순간 어떠한 감정에 휘몰아치듯 잠식당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외로움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 감성적인 아이였던 것 같다. 눈물도 한숨도 나오지 않았지만. 가슴 아래 묵직한 것이 조여오는 기분에 그저 답답해졌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어서 나는 그것을 그냥 그대로 두었다. 후루룩, 뜨거운 유자차를 마시는 소리만 부엌에 울린다. 차는 턱이 얼얼할 정도로 달았다.
2011년 어느 겨울의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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