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후, 사랑하는 돼지에게

 

꼬순내 나는 꼬질꼬질 핑크젤리

무지개 나라로 떠난 지 벌써 1년. 그동안 특별한 일도 별다른 일도 없이 1년이 후루룩 지나가 버렸다. 물론 여러 가지 신변의 변화야 있었지만 너의 빈자리만큼 큰 변화는 아니었다.

네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너에게 갔을 때 너의 눈동자를 보고 나는 죽음을 느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촛불처럼 금방이라도 훅 불면 꺼질 것 같았다. 함께 있을 수 있는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머잖아 기어코 너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너를 보내는 순간에 고통스럽고 무거운 결정을 홀로 해야만 했을 가족 옆에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했으며 긴 연휴 때 무지개다리를 건너 우리에게 너를 보낼 시간을 넉넉이 준 것이 참 기특하고 고마웠다.

보들보들한 등

아직도 그 순간이 기억난다. 현관을 건너 시야에 들어온 너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들어와서 인기척을 내도 미동도 없이 누워있어 내 심장을 몇 번이고 발치에 쿵 떨어트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얄미롭게 그렇게 단잠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작은 발등을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슬슬 문지르면 느껴졌던 따뜻한 온기는 거짓말 같이 싸늘했다. 귓병이 있는 너는 얇은 귀를 긁어주면 시원한지 머리를 자꾸만 내 손 쪽으로 내밀곤 했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너의 몸을 한참을 쓰다듬었다. 내 눈에서 무언가가 너의 몸 위로 떨어져 작은 얼룩을 만들었다. 툭, 투툭, 마치 녹아 흐르는 고드름처럼. 이상하게 흐느낌은 나지 않고 코끝만 찡해졌다. 단지 가슴이 심하게 저렸다. 상체를 힘껏 웅크렸다. 온몸을 둥글게 말아 너를 감싸듯 껴안았다.

토실토실 돼지 꼬리

아주 조금 실눈처럼 눈을 뜬 채 멈춰버린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반짝반짝 예쁘게 빛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작은 발을 집어 엄지와 중지로 문질러보기도 하고, 굽은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미동도 않는, 조금 나와 있는 바짝 마른 분홍빛 혀를 쓸어보다가, 딱딱하게 굳은 꼬리도 매만졌다. 축 늘어진 서늘한 귀에 비해 내 손은 뜨거웠다. 너무나 뜨거워서, 너의 굽은 등에 머리를 기댔다. 툭 튀어나온 딱딱한 뼈가 코끝에 닿았다.

너를 보내는 날의 아침은 네 눈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있었고 너는 보내고 난 뒤의 저녁에는 네 얼굴처럼 선명하고 동그란 달이 떴다.

아직도 침대에 가만히 누워 옆으로 손을 뻗으면 네가 닿을 것만 같다. 가만가만 미간을 엄지로 문질러주면 얼굴을 숙여주던 모습이, 대자로 뻗어 사람처럼 퍼질러 자던 모습이, 내 욕심에 억지로 끌어와 팔베개를 해주면 한숨 쉬면서도 가만히 누워 잠시간 누워있던 사랑스러운 모습이 그립다.

머리 긁긁

너를 보내는 영겁 같은 하루의 끝이 모두 끝나고 홀로 집에 돌아와서야 나는 참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벽이 허물어지듯 울음이 터져 나왔다. 실은 아직도 너를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하지만 이제 정말 너를 보내주어야겠다. 무신론자에 염세적인 데다가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나도 네가 가는 길에는 꽃밭이 있기를 진심으로 염원한다.

천국의 문 앞에서 나를 기다려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곳에서는 싫어하던 발톱 깎기도 매일 먹어야 했던 냄새 고약한 심장약도 없이 통통한 네발로 두다다다 힘껏 원하는 대로 내달렸으면.

사랑하는 돼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