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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커버린 원숭이가 부르는 노래/인생은 언제나 삐딱선

보통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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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은 어느 때보다 대한민국을 뜨겁게 만들었지만, 나에겐 가장 추운 여름이었다. 그리고 나의 가족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생각은 많았던 중학생인 나는 척추 골절로 영원히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은 멈췄다. 시름만큼 깊어진 욕창으로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퇴원 후에도 한동안 집에서만 지냈다.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게 빠져드는 늪 속에서 턱 끝만 겨우 내밀어 호흡하는 고장 난 인형 같았다.

 

그러다가 근처의 특수학교를 소개받았다. 다시 난 중학생이 되었다. 사고 후 몇 해가 흐른 다음이었다. 시계는 다시 움직였다. 목표가 생겼다. 독립. 물리적 거리를 만들어 장애를 가진 자식의 부모가 되지 않도록 멀리 떨어지자. 더 이상 걷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장애가 있는 자식을 가진 부모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나를 부끄러워함이 느껴졌고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 취업을 해서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꿈이자 유일한 목표였다. 이런 마음은 수능을 준비할 때, 취업을 준비할 때, 실적을 위한 업무를 할 때 등 큰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목표에 골몰한 나머지 스스로를, 그리고 가족을 외롭게 만들었다.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시간을 되돌려 돌아가면 조금 다를까. 그것도 자신 없다.

 

장애가 없는 사람도 보통의 삶을 산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첫 번째로 취업한 회사를 그만두고 홀로 여행을 떠난 날, 타국에서 아침에 일어나 신발을 신는데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붓기 없이 날씬한 발. 발등을 살짝 눌러도 살이 움푹 들어가지 않는 발. 발등도 발목도 퉁퉁 부어있지 않은 뾰족한 발. 내 발이 원래 이런 모양이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내 발을 이토록 유심히 바라본 것도 처음이었다.

 

동시에 내가 그어놓은 보통의 삶의 경계도 무너졌다. 마음이 한번 무너지고 나서야 알았다. 남들의 기준에 맞추며 살아가는 삶은 나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그냥 오늘의 날씨처럼 참고나 하는 수준으로 받아들인다. 장애가 생김으로 인해서 나의 삶은 달라졌다. 하지만 장애가 없었다고 해서 멀쩡히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는 대신 그 시간에 옆에 두고 싶은 좋은 사람들에게 시간과 마음을 더 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지는 않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기는 하니까. 그렇게 살다보면 언젠간, 보통의 삶에 닿아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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